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(문단 편집) === 결혼과 육아 === [[빅토리아 여왕]]은 딸을 항상 곁에 두고 외국에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지만, 외교 관계를 고려한 [[앨버트 공]]의 의향으로 [[프로이센 왕국]]과의 혼약이 체결되었다. 1858년 [[1월 25일]], 빅토리아 공주는 [[빌헬름 1세|빌헬름 왕태제]]의 장남인 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왕자]]와 결혼했다.[* 당시에는 백부 [[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]]가 살아있었고 아버지 빌헬름 1세는 왕태제였다. 즉 왕위 계승 2순위이다.]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The_Marriage_of_Victoria,_Princess_Royal,_25_January_1858.jpg|width=100%]]}}} || 프로이센 왕실에서는 두 사람이 [[베를린]]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, 워낙 아꼈던 딸인데다 [[빅토리아 여왕]]의 독단적인 고집까지 맞물려, 프로이센 왕실의 주장은 이루어지지 못했다. 빅토리아 여왕은 직접 프로이센 대사를 불러 "[[영국]] 이외의 장소에서는 결혼식을 할 수 없다."고 통보해, 결국 [[런던]]에서 결혼식을 올렸다. 훗날 빅토리아 여왕의 차녀 [[영국의 앨리스|앨리스 공주]]도 아버지 [[앨버트 공]]의 뜻으로 [[독일]] [[헤센 대공국]]의 [[루트비히 4세(헤센)|루트비히 4세]]에게 시집갔다. [[앨버트 공]]이 사망한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더 이상 딸들을 외국에 시집보내지 않으려 했고, 3녀 [[영국의 헬레나|헬레나 공주]], 4녀 루이즈 공주, 5녀 [[영국의 베아트리스(1857)|베아트리스 공주]]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혼한 후에도 [[영국]]에서 거주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848494-1544435372.jpg|width=100%]]}}}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295131-1340800216.jpg|width=100%]]}}} || || 1862년의 가족사진.[* 왼쪽의 아이는 [[빌헬름 2세]], 오른쪽의 아이는 [[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샤를로테|샤를로테 공주]]이다.] || 1874년의 가족사진. || 부부간에 금슬은 매우 좋았고, 4남 4녀를 낳았다. 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3세]] 또한 아내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였기에, 결혼 생활은 행복한 편이었다. 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8명의 자녀 중 맏이가 훗날 [[독일 제국]]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[[빌헬름 2세]]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